[림이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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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꽃잎 (A Petal, 1996)

로뿌호프 2006.04.13 11:25
오늘 영화 '꽃잎'을 보았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서 혼자 종로의 한 극장을 찾았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그리고 광주.......
영화를 보고 났다. 영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지금 나의 기분은 사실 나 자신도 뭐가 뭔지 모를 기분이다.
일단 떠오르는 영화의 형식적은 면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 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광주에 대한 많은 얘기를 담았다.

광주.....
1980년 오월 광주의이야기....
영화에서는 미친 소녀가 나온다. 그리고 세상에 찌들대로 찌들린 인생인 한 남자도 나온다. 그들이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영화를 보고나서 모르는 것 투성이다.

소녀의 온 가슴과 머리, 눈동자, 그리고 그 가냘픈 손가락에는 광주가 남아 있다. 김추자의 '꽃잎'을 수줍게 부르던 소녀는 그날의 경험으로 인해 미쳐버리고 말은 것이다. 그 작은 가슴속에 담기에 광주는 너무나 크고 아프고,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였으리라.....

시적인 영화의 전개때문인지 시종 영화를 보고 있던 나의 기분은 착잡하고 슬프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감독이 광주의 아픔을 그 소녀의 작은 가슴에만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는 그러하기 때문에 한이 되었고, 그러하기 때문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일 것이다. 광주가 그 동안 그 소녀처럼 홀로 있었기 때문에 광주는 그렇게 슬프고 외롭고 나약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광주가 과연 그렇게만 버림받고, 그렇게만 나약하고, 그렇게 슬프기만 하였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그 광주의 아픔은 그 소녀처럼 그렇게 버려지고 강간당하고 한것만은 아니였던 것인데 말이다. 광주의 그같은 피로써 우리의 80년대는 그토록 격렬하고 정의에 불타고 불로써 피어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유영길의 카메라는 소녀의 작은 가슴에만 너무 머물러 있었고, 그곳에만 갇혀 있었다. 그보다는 청년의 굳세고 넓은 가슴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다고 소녀의 그같은 현상적인 비극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역시 90년대의 영화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다루는 그 소녀의 비극에 대한 편협한 확대는 지금 이 시대의 회의주의와 또 성급한 화해의 동작으로 보여진다. '광주' 하나만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고 우리를 뜨겁게 하던 그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그것은 단순히 노태우 전두환이 사라졌다고 해서 매듭지어질 문제는 아닌데 말이다.

장선우 감독이 여러가지 영화적 장치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말하고자 했던 광주의 문제에 대한 것은 애매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 역시 박광수 감독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제를 겉도는 영화 전개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모 아닌 유모들은 보는 이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시대가 아무리 신성한 것이 없고 아무리 진지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광주가 그와 같이 묘사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조차 거칠고 경박하게 다루었다.

영화가 끝이 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둘러 바삐 극장을 빠져 나갔다. 반면 마지막 자막이 오르도록 끝까지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더욱 의아한 건 그런 사람들 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같이 이야기 하고 싶고, 같이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그냥 영화를 보고 각자의 길로 헤어지는 하나의 관객들인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세상에 대해서 마치 혼자만 광주에 대한 기억으로 미쳐가는 별종인 소녀..같은 별종끼리 서로 외면하고 서로 혼자씩 떨어져 버리는 우리들..나는 눈물 조차 흘리면 안되겠다는 반항감이 들었다. 하지만 극장문을 나서면서 뒤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아까, 그 데모 장면 있잖니..그걸 며칠씩 찍는데도 광주 사람들이 한마디 불평도 없이 가계문도 닫고 다들 열심히 도와주었다지 뭐니'
그렇다, 이제는 그 소녀도 외롭고 그처럼 가엽게 혼자 미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직도 광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살아 있기 때문에 말이다. 영화 속에서의 가여운 소녀 때문이 아니라, 영화 밖에서 느낀 광주시민들의 그날의 정신 때문에 참았던 눈물을 속시원히 흘려 낼수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광주..아직도 살아 있는 광주..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 소녀를 때리고 학대하고 외면하고 방관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꽃잎은 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찬란하게 피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8/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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