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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로뿌호프 2012.04.16 22:25

인터넷이라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이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도구와 수단의 출현에 이처럼 단기간내에 뜨겁게 환호받는 것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각광을 받고 실제 벤처머니라고 해서 돈도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모바일 환경까지 도래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네트워크의 가능성에 다시한번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환호가 보이는 그대로 일까? 본격적인 IT, 인터넷 시대가 20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반대되는 의견 적어도 되짚어봐야 한다는 의견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사고, 즉 인간의 뇌에 대한 좋지 않은 영향에 대한 연구와 주장을 드러내고 있다.

 

관련해 이 책을 읽기 전 많이 읽혔던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 세탁기와 인터넷을 비교하여 과연 어느 것이 인류에게 유익한가가 그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관점은 명쾌하다. 세탁기가 인류에게 더 많은 변혁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가사노동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임으로써 노동이나 여가 등 일종의 해방을 가져온 것은 세탁기이지 인터넷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적 사례를 봐도 서양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 취업과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게하고 따라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게 된 것은 지금 시기의 인터넷의 영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역할을 해냈다.

 

 나아가 속도의 측면에서도 이메일이 기존의 통신수단인 '전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 차이를 가져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보는 단축시킨 시간과 이메일 줄인 시간을 비교하면 놀랄만 하다. 전보는 배를 이용한 우편에 비해 몇 천배의 속도 절감을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메일은 전보에 비해 고작 몇 백배 정도의 속도차이를 보일 뿐이라고 한다.

 

사회적 문화적 측면 외에 개인 특히 인간의 사고를 이루는 뇌에 대한 인터넷의 영향은 어떤 것일까. 책에서는 여러 사례를 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사고를 컴퓨터에 아웃소싱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기계적인 사고 즉  선형적 사고에 대한 위험성을 이 책에서 경고하고 있다. 즉 인터넷은 그 동안의 우리가 사용했던 그 어떤 도구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특히 뉴런과 시냅스 개념을 이용해 뇌에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 많은 사례를 소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책에서는 인터넷 문서들을 이루는 핵심요소인 하이퍼텍스트, 즉 문서간의 링크 혹은 검색어를 넣어서 결과값을 찾는 연산의 과정이야 말로 초창기의 경탄과는 달리 필요이상의 정보를 노출하고 이로인해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환경에 장시간에 노출됨에 따라 사고의 약화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이 결국 광고와 연관콘텐트를 의도적으로 노출하여 읽는 이의 산만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서비스의 최정점에 있는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사고 자체를 아웃소싱하여 결국 기억하고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인간이 아닌 기계에게 맡기는 것이야 말로 인류의 지적 유산의 최고봉이 아니라 인간을 뇌없는 유기체로 몰락시키는 것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물론 희망적인 이야기도 있다. 언론에서 회자되는 '디지털 치매'와 같은 단어처럼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긴 관점에서 인류의 이기나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인간이 적응하는 시간의 차이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구텐베르크로 인해 대량 인쇄책자가 생산 가능해졌을 때도 수동적인 독서의 형태가 인간의 직관과 통찰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인터넷의 등장과 약간의 부작용은 인류 역사의 긴 관점에서도 현시점의 적응의 문제이지 궁극적으로는 인류 사고와 문명 발전에 좋은 방향으로 역할을 할 것에 대한 조심스런 견해도 있다.

 

정보와 지식은 다르다. 모니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웹서핑을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몰입'이 아니다. 몰입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수학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수학자의 모습에서 떠올릴 수 있듯이 행위와 주체가 일체가 되어 몰아지경에 이르는 집중의 순간을 뜻한다면, 텔레비전 수상기를 켜거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우리들에겐 주체가 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주고받는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통해 소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일종의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전화를 걸어 친구와 약속을 잡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교환하는 것이 수많은 정보와 말보다도 깊은 연관관계를 맺게 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깊은 상념에 빠졌던 옛 사상가들의 사고의 깊이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로 중요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인류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에게 그리고 맑스에게 인터넷이 과연 날개를 달은 듯 그들의 사상체계에 기여했을거라고 말하긴 힘들다.

 

월스트리트 시위 '월가를 점령하라'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했던 지젝의 말을 인용하면서 맺고자 한다.


‎"카니발은 싸구려가 될 것이다. 여기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여러분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말라. 이 시간들의 진정한 가치를 시험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날들이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상 생활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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