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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정: 나의 청년 시대 (리영희 作, 창비 1988)

로뿌호프 2012.05.01 22:09

얼마전 타계하신 故 리영희 선생이 직접 자신이 걸어온 경로를 쓴 자서전이다. 사실 선생의 거의 모든 저작은 읽거나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구입하였는데 그동안 '역정'이라는 자전적 에세이가 있는지는 몰랐었다. 이번에 생각지 못했던 저작을 알게되자 마치 다락방 깊숙히에 숨겨져있던 보물을 찾은 것 마냥 반가웠고 또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뇌일혈이 발병하여 병상에 계실 적, 더 이상의 집필은 하지않겠다고 선언하셨던 때, 미리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신 그 유명한 '대화'라는 대담집을 통해 선생이 삶의 궤적과 지향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아직 젊으셨던 88년도의 '역정'은 느낌이 또 달랐다. 


책 곳곳에 시대와 가정과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과 후회 그리고 학교, 군대, 신문사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역사의 발전에 공헌했던 자신의 노력과 자부심 등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선생의 정서는 '솔직함'이다. 마치 자기 자신을 대하는 인생에 대해서도 우상을 허물고 이성을 지향하는 듯한 과학적 자세를 견지하는 듯해 보인다. 


다만 자서전인 만큼 선생의 기존 사회과학 저서에선 볼 수 없는 에피소드에 묻어있는 주관적이고, 해학 넘치는 표현과 비유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 고향 산천에 대한 묘사와 소개를 읽고 있노라면 문학적 감수성 느낄 수 있어  뜻하지 않았던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학창시절 식민지 조국에서부터 해방을 거쳐 한국해양 대학에 입학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장교로 입대한다. 전쟁 후 이승만 독재하에서 기자가 되어 4.19의 현장에서 직접 겪은 혁명의 순간. 그리고 5.16쿠데타 이후 63년 케네디를 만나러 간 당시 박정희 의장과 함께 미국을 다녀와서 남긴 특종까지를 다루고 있다.


살면서 죽을 고비를 실제로 3번정도 겪었던 선생이 인생을 바라보는 입장은 '인명은 재천이요,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것에 함축되어 있다. 평생을 짊어지고 갔던 가난 속에서 월남 이후 고생만 하고 가셨던 부모에 대한 죄송한 마음안에는  자기 자신은 물론 식솔들의 안위를 위해 철저히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았던 선생의 지독한 원칙과 소신에 어찌 번뇌와 갈등이 없었으리랴 하는 점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게다가 평생을 묵묵하게 자신을 따라주던 아내와 병으로 큰아들을 잃은 슬픔에 이르러서는  선생의 인생의 무게를 견디고 지탱해온 가치관의 배경에는 지극히 겸손하고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고 멀리 내다 볼 수 아는 역사속의 의식화된 주체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시점인 88년의 선생은 드디어 스스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오면서 열정적으로 실천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이것은 전설 속에 나옴직한 '투사'와 '영웅'의 그것이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책서리, 당시 언론사회에서 만연했던 기자 촌지, 치기어린 여성에 대한 욕정 대해선 큰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평생을 가슴 속 반성으로 담지만, 독재자와 외세에대한 만민중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대의를 위하여 그 어떤 것에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한다.


 선생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까지는 많은 컴플렉스를 극복하려 끊임없이 공부했으며, 입신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대의를 향했고 학연, 지연 등 어떠한 부패의 고리에 속하지 않으려 주위를 깨끗이 하였다. 물론 책에서 추상은 경외스러울 정도로 겸손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선생은 진보의 입장보다도 과학의 측면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 삶 자체를 통해 끊임없이 답을 갈구한 분이다. 게다가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결국 인간은 화석처럼 굳어진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번민하고 고뇌하는 진행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실천이라는 면에서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우상을 타파하고 또 행동하는 운동을 독려하고 몸소 실천한 분이다. 그것이 민족이냐, 계급이냐, 민중이냐, 노동자이냐도 중요하지만 당시에나 지금에도 중요한 것은 핍박받는 다수에 대한 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속에서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는 개인은 언제나 '인명은 재천이고, 모든 일은 새옹지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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