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이적다]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지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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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지음

로뿌호프 2009. 3. 24. 21:41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수많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베일은 역사 마디마디 아주 켜켜이 드리워져있다. 어느 역사인들 후세에 이르러  명명백백하게 사실이 밝혀지고, 모든 인과관계가 투명한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그리 오래전 시기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왜곡당한 것이 많다. 실질적으론 역사가 봉인당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해방이후 네 가지 세력이 들어간 역사는 핵심적으로 봉쇄되어 왔다. 그 요소는 크게 첫째 친일파, 둘째론 좌익, 셋째는 민족주의, 넷째는 미국이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여순항쟁부터 6.25를 조명했다. <태백산맥>은 거의 모든 요소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해악과 북한이 담당한 역사적 영역을 긍정적인 시각을 인정하고 있다. 황석영은 <손님>에서 신천 미제 양민학살사건을 다뤘다. 역시 이 소설에서도 6.25라는 비극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갈등 속에서 피해를 입은 민중의 슬픈 이야기를 고발한다.

<밤은 노래한다>의 김연수는 일제 강점기 하 만주사변 이후 벌어졌던 '민생단 사건'의 비극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서 일제 강점기 하 좌익 독립운동 세력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이 사건을 조명하면서 만주에서 민족해방 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크나큰 고통을 겪어왔는지를 세상 밖으로 꺼내어 알리고 있다.

민생단 사건은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베일을 한겹 벗겨지게 되었고 그만큼 이 사건은 지금까지 거의  감금당했던 사건이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좌익의 항일 독립투쟁사 자체가 봉인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알려 지지 못했던 사건이다. 저자가 후기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을 십년이 훌쩍 넘게 구상하고 집필한 것이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소설은 남다른 근성과 민족사의 비극에 대한 집요한 신념이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었다.  소설과 관련해 남다른 감회가 있는 작가는 후기에서 다음과 소회를 밝힌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줄 때까지 계속 간절히 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열망을 이뤄질 때까지 열망한다"

즉 거의 자료가 없던 민생단 사건이 10년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자료들이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의 규모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중국공산당에서 확인한 사망자 수만 500명에 달할 정도이니 실제 피해자는 근 2천여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민생단 사건은 일제가 만주를 빼앗고 나서 친일파 조선인들을 중심한 한 친일 정치 조직이었다. 일제는 이 단체를 통해 중국공산당 세력과 조선 공산당 세력의 연합을 파괴하고 공산주의 세력의 분열을 책동하기 위한 공작을 펼쳤다. 실제로 당시 동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항일 세력들은 중국에 의해 민생단 간첩으로 오인을 받았다고 하니, 일제의 공작은 그야말로 중국,한국의 항일연합 전선에 큰 분열을 일으켰고, 조선인 항일세력을 거의 괴멸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당시 민생단 사건의 폐해와 그 광기어린 숙청의 실상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정치적 이유로 숙청이 시작되었지만, 일단 숙청이 가속화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설구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배탈이 나거나 두통을 호소해도 민생단,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설사를 해도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이 어렵다고 불평해도 민생단,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일제의 감옥에서 처형되지 않고 살아돌아와도 민생단, 오발을 해도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 민생단 혐의자와 사랑에 빠져도 민생단,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으로 몰리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일제의 간첩으로 모는 꼬투리는 끝이 없었다. "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중에서 인용-


 그래서 한홍구 교수는 민생단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어버이 수령’과 인민들 간의 독특한 혈연적 유대 관계, 자주 노선, 정치적 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소설 속에 나오지는 않지만, 해방이후 북한의 주체사상 및 사회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로 민생단 사건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소설은 특별한 민족의식이나 독립의식이 없던 주인공 김해연이 직장 때문에 동만주로 부임했다가 바로 이 민생단 사건의 회오리에 휩싸여 어떻게 단련되고, 어떻게 상처받고, 변화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정희라는 엘리트 독립운동가 여성과 여옥이라는 생생한 민초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서, 민생단 사건의 아픔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나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문학적으로 깊이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런 부분은 감히 비교하자면 <태백산맥>이란 거대 서사에서 볼 수 없었던 감성이며,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와닿는 역사의 문학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설명했던 민생단 사건의 끔찍함과 그 비극성은 우리 내부에서 벌어졌다는 데에 있다. 어제까지 숟가락을 나눠 밥을 먹고, 함께 밤이슬을 맞으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신했던 동지들 간의 의심과 배신으로 인한 살육은 자신의 집에 든 강도살인의 아픔보다도 가족내부끼리의 존속살인처럼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그걸 노린 외부세력의 모함이라니 더더욱 그렇다.

주인공 김해연은 이로 인해서, 정희의 진실한 사랑을 몰랐고 외면했고 의심했다. 그후 여옥을 통해 깨달은 사랑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또 한번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옥의 삶에 배인 사랑과 투쟁은 해연을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하게 한다. 또 다른 민생단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원수를 살려줌으로써 진정으로 이 사건의 비극을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신뢰야 말로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이라는 데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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