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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Time Lasts, 1996)

로뿌호프 2006. 4. 13. 11:57
 
폭풍의 시대..
- 80년대를 회상하는 많은 이들에게 팔십년대는 폭풍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사회의 폭력과 억압의 지배가 가장 정점을 이룬 5공시대..동시에 해방이후 가장 활발한 저항정신과 다양한 사상의 발현으로 혁명을 꿈꾼 그 시대..그리고 그 젊은이들..

지금은 30대가 되어 있을 그 젊은이들에 대한 특히 그 시대를 대학생으로 지냈던 80년대 학번인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어쩌면 97년 현재에서는 관심밖으로 밀려 났을지도 모를 그들에 대한 그 시절에 대한 상념을 최초로 그려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러시아 이고 사람들은 송년회를 하기 위해 모인다. '살아있는 자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한 중기는 80년대에 죽어간 동지들을 회상하고 그 속에서 배신이던 아니던 어떠한 경로로 살아 남은 자신의 처지를 자괴하고, 또 지금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가 흔히 그리는 일반적인 80년대의 젊은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칭 속물로 표현되는 수진이네 일가는 운동을 젊은 날의 통과의례정도로만 인식하는 즉 현실세계에 적당히 타협하고 그속에 순응은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컴플렉스를 그때 운동을 했던 동료들에 대한 자기 허위의 기제로, 즉 그들에 대한 배려로서 자기 합리화 내지는 위안을 삼고자 한다..


트로츠키를 신봉하는 이상주의자적인 혹은 극단적인 사회주의자인 기웅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조급하고 혹은 경솔한 자기 회의 속에서 번민하다가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은정이란 인물은 운동을 인간관계 속에서만 한정시키고, 그저 지성인의 교양쯤으로, 지적유희의 요소로 보는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주인공인 선재만큼 비중이 있는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를 전하는 인물인, 같은 80년대라는 시공간을 대학생이 아닌 임금노동자로 살아온 완구는 찻집에서의 대화를 통해 80년대를 대학생으로서 살아온 이들에게, 그들과는 달리 생활로서 러시아에 들어 오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그들의 주위를 환기시켜주면서 현실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또 다른 희망의 기운을 표명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선재'는 그들의 모두의 삶의 방식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중기에게 애정을 느끼고, 또 생활인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지만, 중기와의 다툼으로 싸우고 나가는 장면에서, 그날 낮에 스키장에서 중기와의 키스에서 암시되었던 현실과의 적응과는 다르게, 선재의 흐느낌으로 대변되듯이 계속 자기 자신과의 심한 갈등과 괴리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어떠한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선재의 부유(浮遊)가 극명하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라기 보다는 위와 같은 인물들의 하룻동안의 만남을 우리에게 그냥 보여주고 있는 형식이다. 그저 어떠한 인위적인 장치가 없이 다큐멘터리 식의 보여줌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군데군데 연극적인 요소도 보인다. 배역의 특징으로서는 '선재'역으로 나오는 김선재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마추어 배우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가 아닌 배우들이 나온다..


이는 선재역만 현실배우가 분함으로서 실제인물이 분했던 타 역할에 비해 차별성이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80년대 실제 인물들인 배우 아닌 배우들은 오히려 이런 캐스팅으로 인하여 과거의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전달자로서의 주인공은 반대로 배우가 연기를 함으로서 비중있는 역할로서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칼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나오는 현실에서 죽은 애인의 사진 앞에서 유일한 연기자이고 감독의 화자인 주인공은, 신발을 한짝만 신은 채로 흐느끼며 지나온 팔십년대의 시대와 미완의 혁명을 아직도 그리워하며 울고 있었다.



1997/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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